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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학의 아침칼럼 '문경지교'

편집국장 0 191

문경지교(刎頸之交)


언제부턴가 우리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어져 버렸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건 아니다. 대부분이 그렇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이 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지고 이기주위가 횡행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편린(片鱗)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꼭 그런건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알다시피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눠먹고 있으면 있는 대로 나눠 먹었다. 혹, 친구가 다른 동네 또래들에게 고통을 당하면 그 즉시 친구들을 볼러 모아 홍역을 치르게 했다.

그러고도 좋았다. 아무런 대가도 없었다. 그냥 그게 좋았고 친구였으며 우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모두들 가슴에는 ‘우정’이라는 단어를 깊이 깊이 못박았다. 더욱이 누가 시키거나 사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고 먹고 살만한 시대가 되다 보니 그러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말로는 친구라 하면서도 만나기만 하면(사실은 난기도 전에) 서로가 잔머리를 굴리며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이용해 먹을까 하는 그런 생각만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손해보려는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친구’라고 한다.


진나라가 조나라의 성을 빼앗은 뒤 평화교섭을 하자고 통고했다. 통고를 받은 조나라 혜문왕은 진나라가 두려워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조나라 대장군 염파와 인상여가 말했다.


“왕께서 가지 않는다면 우리 조나라가 약하고 비겁하다는 걸 보여 주는 꼴이 됩니다”


결국 혜문왕은 인상여와 함께 진나라에 가서 평화교섭을 맺었다.


하지만 진나라 왕은 술상이 벌어진 자리에서 조나라 왕을 굴복시키려 갖은 잔머리를 썼다. 끝내 인상여의 기지와 용기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진나라 왕은 포기하고 말았다.


조나라로 돌아온 혜문왕은 인상여의 공을 높이 사 경대부(卿大夫)로 임명했다. 그러자 대장군 염파가 자신보다 더 높은 벼슬에 오른 인상여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조나라의 장군으로 적의 성을 빼앗고 전투에서 승리한 커다란 공적이 있다. 그런데 인상여는 입과 혀만 움직였을 뿐이다. 게다가 인상여는 비천한 계급 출신이다. 내 어찌 그런 자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기회만 오면 인상여에게 모욕을 주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인상여는 가능한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조정에 들어갈 때도 병을 빌미로 들어가지 않아 염파와 서열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어느 날 인상여가 외출을 했는데 멀리서 염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수레를 옆길로 돌려 염파가 지나갈 때까지 숨어 있었다. 그러자 인상여의 부하들이 물었다.


“저희들이 어른을 모시는 건 어른의 높은 뜻을 추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항상 이런 식으로 염장군을 피해 도망치시는 까닭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인상여가 말했다.

 “너희들은 진왕과 염장군 중 누가 높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진왕이 높지요” “나는 진왕을 그의 궁전에서 꾸짖고 그의 신하들에게도 모욕을 안겨 주었다. 네 비록 우둔하다 할지라도 어찌 염장군을 두려워하리오. 다만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염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염장군과 맞서 싸운다면 조나라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고 결국 함께 죽음에 이를 것이다. 내가 그를 피하는 것은 국가의 위난을 먼저 중시하고 나의 개인적인 원망은 뒤로 돌리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매우 부끄러웠다. 그는 벌거벗은 몸에 가시를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했다.


“비천한 사람이 장군의 아량이 이토록 깊은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는 사이’刎頸之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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