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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과 ‘순교자적 정신’

편집국장 0 114

<김병학의 아침칼럼> ‘한 장의 사진’과 ‘순교자적 정신’


온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 바이러스는 지구상에 단 한번도 출현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인지라 아직까지 이렇다 할 치료제마저 없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 돼 버렸다. 심지어 아무리 반가운 사이여도 손을 잡기보다는 손 등으로 가볍게 터치하고 마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와 버렸다. 심지어 하루 밤새 몇 명의 확진자가 어느 지역에서 발생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자리매김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수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아프거나 죽어가는 상황에 이르자 이제는 ‘나도 잘못하면 감염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감에 사실 일상생활마저 엉망이 돼 버렸다.


그래서일까, 바이러스에 감염돼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단순히 그들의 운명(?)에 맡기기에는 웬지 모를 잔인함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더욱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케어하고 또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군의 봉사자들을 보는 시각이 매우 달라졌다.


비록 지금은 나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안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 형제 우리 친척 가운데 그 누군가가 바이러스로 생을 달리한다고 생각하면 그냥 모른체 하고 있을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 달 29일, 경북 칠곡군 보건소에서 검체 체취를 하던 한 여성 공무원이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채 피곤에 지쳐 눈을 감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커다란 군(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이 사진을 본 군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쪽잠을 자겠나, 잠시라도 좋으니 편하기 눈을 부칠 수 있도록 대신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겠다”(전 간호사 이태화 씨)라며 기꺼이 자신을 불러 줄 것을 자원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비록 당시 여성 공무원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이였지만 이 씨는 “내 자식이 아니면 어떻냐, 모두가 우리 형제요 친척인 것을” 하는 심정이 발동했으리라 본다.


그런가하면 호텔을 경영하는 김정근 씨는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는) 여성 공무원 사진을 보고 눈시울이 촉촉이 젖었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며 자신이 운영하는 호텔의 객실 뿐만 아니라 영양이 듬뿍 담긴 조식까지도 제공하겠다고 했다.


인쇄소를 하는 사장님과 횟집을 하는 사장님도 구운 계란과 회도시락을 제공했다.


온정의 손길은 계속됐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주민은 5만 원 권 지폐 10장을 봉투에 넣어 읍사무소 직원에게 전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으며 지역 종교계는 빵과 우유 등 음료를 제공하고 지역 내 각급 봉사단체들도 도움의 손길을 폈다.


바로 이것이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진정 우리 민족의 숨은 저력이며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본 모습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삶의 저층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 안고 고통을 분담하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름하여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는지 묻고 싶다. 그 어디에도 그들이 헌신을 한다거나 봉사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잘도 피해 다닌다. 그게 주특기인양.


설마 아니 ‘사람 많은 곳에 갔다가 나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그런 유치하고 소아병적인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본다. 설령 그렇게된들 무슨 대수인가. 늘상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그들이 그런 상황을 맞았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순교자적 정신’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는 말만 번지르하는 ‘야바위꾼’을 찾고 있는게 아니다. 진정으로 아픔을 같이 하고 고통을 분담할 줄 아는 ‘순교자적 정신’을 지닌 일꾼을 찾고 있다. 이제 한 달 후면 총선이 실시된다. 이번 총선에 나서는 사람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전 국민이 ‘코로나-19’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지금, 어느 예비후보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확진자들을 위로하고 예방활동에 여념이 없는 의료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넸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말로는 하룻밤 새 100층 빌딩을 짓고 당장에라도 백두산을 옮기고도 남을 것 같은 말을 하는 그들을 우리는 믿지 못한다. 서민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당장에라도 해결해 줄 것만 같은 그들을 우리는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이제 쭉정이와 알곡을 가릴 날이 (계획대로라면) 딱 40여 일 남았다. 

/ 발행인, 언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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