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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학의 아침칼럼) '하지 말라고 하는데 기어코 하는'

편집국장 0 443

하지 말라는데 기어코 하는


‘코로나-19’의 충격으로 대한민국이 아니,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대구 경북지역은 감염병 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 풀어 말하자면, 이번 전염병은 과거 그 어떤 전염병보다 전파력이 크고 치사율이 높기 에 그만큼 서로가 조심하자는 의미일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집단이 있어 국민적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바로 개신교 집단이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할 당시 정부는 집단으로 모임을 하는 행사나 집회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집단으로 예배를 보는 종교시설에 대해 특별강조를 했다. 그 결과 천주교와 불교는 지금까지 일체의 집회를 열지 않고 ‘코로나-19’의 조기 종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개신교만 다른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물론 모두가 그렇다는게 아니고 상당 수가 그렇다는 얘기다). 마치 다른 종교야 (집합예배를) 드리든 말든 우리(개신교)는 하겠다는, 어찌보면 매를 맞아야 울음을 그치는 철없는 어린아이를 보는 느낌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목적(꿍꿍이 속)으로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취하는 걸까.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하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수시로 걷히는 ‘헌금’이 줄어든다는데 가장 신경을 곤두 세운다. 이는 그들이 아무리 다른 이유를 들이대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실제로 개신교는 헌금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종교다. 말로는 ‘예배당’이라고 하는 특정 장소에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참된 예배라고 주장을 하지만 실상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게 개신교의 운영행태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헌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당장 교회를 운영할 수가 없다. 일단은 교회들이 ‘사례비’라고 칭하는 목회자(목사, 부목사, 전도사 등)와 일련의 직분자(관리집사 등)들에게 지급되는 월급과 교회에서 직간접적으로 후원하는 선교비 또는 목적사업비, 대출이자 등 매월 정기적으로 나가는 각종 공과금 등이 온전히 ‘헌금’이라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단 한 주만이라도 공(公)예배를 실시하지 않으면 모든 운영이 뒤틀려 버린다. 그게 작금의 한국 개신교의 재무구조 형태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규모(사이즈)가 적을수록 더 심각해진다.

그렇다고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나 중직자(장로나 집사 또는 권사와 같은)들이 알아서 ‘헌금’을 하지는 않는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매주 정해진 작정헌금(십일조, 선교, 건축 등)을 내야 하기에 이중삼중으로 헌금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개신교들이 굳이 ‘집합예배’를 주장하는 데에는 그들만의 이유가 또 있다. 일단은 ‘모여’서 합동으로 예배를 드려야만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또 그렇게 해야 만이 진정한 예배라고 주장(믿는게 아닌)한다는 사실이다.

글쎄다, 과연 그러한 주장이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성경 가운데 ‘반드시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만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구절이라도 있는 걸까.

미안하지만 필자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도 인격을 지닌 분이시고 불쌍한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실진대 유독 목회자들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평소 같으면야 모여서 예배를 드리든 혼자서 드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총성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꼭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느냐이다.

작금의 한국 교회는 커다란 착각(사실은 무지) 속에 빠져 있다. 아니다, 한국의 목회자들은 성경을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을 하고 있다. 지나치게 세속화 되어 있고 이기주의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도무지 사회와 합력하려 들지 않는다.

또, 무슨 일이 있어도 손해(?)를 보려는 생각은 없다. 공예배를 드리지 않아 헌금이 걷히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걷혀진 헌금이 누구의 돈이길래 그들은 목숨을 걸고 집합예배를 드리려고 하는 걸까. 순전히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함일 뿐 성도들을 위하려는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진정으로 성도들을 위한다면 성도들이 ‘집합예배’를 드리자고 고집을 부려도 가정에서 드리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더욱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 신앙심이 약해진다고 하는데 이 또한 무슨 소리인가, 도대체 그런 괴상망측한 이야기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이 또한 목회자들의 지나친 억지논리이다. ‘집합예배’를 드리다 성도 가운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되는 날이면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다. 무책임의 극치다.

실제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은혜의강교회 47명과 경기도 부천시 생명수교회에서 15명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는가. 그럼 이 사람들을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목회자도 똑같은 사람인 이상 자신부터 치료하기에 바쁘다.

언제부턴가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게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로 변해 버렸다. 그만큼 교회는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세속화 돼 버렸다는 반증이다.

오히려 무신론자보다 더 못한 종교인(신앙인이 아닌)이 돼 버렸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나름의 고집 부림을 볼 때, 과연 한국이라는 나라에 교회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본다.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는게 사람이요 이치에 맞다.

정부 관계자만, 부자만, 지식인만 살자고 그러는게 아니지 않는가, 모두가 안전하게 살자고 그러는게 아닌가. 만에 하나 개신교들의 주장대로 끝까지 집합예배를 드려 모든 성도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도 교회가 필요하겠는가.

성도없는 교회가 무슨 존재가치를 갖겠는가.


꼭 회초리를 들어야만 정신을 차리겠는가.

/ 본지 발행인, 언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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