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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그리고 양심

편집국장 0 98

40년 그리고  양심


광주가 고향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당시 전남도청 옆 전일빌딩 골목에는 고시학원들이 즐비했었다. 친구 한 녀석은 수강료가 없어 한 학원에서 청소를 해주며 공짜 수강(?)을 듣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재수생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취업란은 우리 사회가 풀지 골칫거리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직업을 구하기 위해 학원가로 발길을 돌렸다. 학원가 창문에는 크고 작은 구인광고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운이 좋은 사람은 그곳에서 일자리를 얻기도 했다.


이런저런 구인광고를 보고 허탈한 마음으로 금남로를 걸어 터벅터벅 걸어 오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뛰어가고 짐짓 전운(戰雲)이 감도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래도 큰 신경을 쓰지 않고 한참을 걸어오는데 이번에는 조금 전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 상점들은 하나 둘 급박하게 셔터를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금남로3가쯤 걸어오는데 그러한 느낌은 눈 앞의 현실로 나타났다. 여기저기 중무장을 한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뛰었다. 뭐가 뭔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양동 중앙여고 인근에서 살고 있었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한 나는 아버지에게 혼쭐이 났다. 지금 시국이 어느 시국인데 그렇게 활보하고 다니냐고.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들은 상황은 사실로 드러났으며 결국 ‘5.18’이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대문 앞에 의자를 놓고 나를 감시했다. 혹여 시민군에 합류하여 귀한 자식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꼼짝않고 대문을 지키셨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아버지가 나를 감시하지 않았다면 분명 나라는 사람도 시민군의 대열에 끼여 어쩌면 지금쯤 ‘민주묘지’에 묻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 나는 경상북도 한 작은 도시로 취업이 되어 떠났고 그곳에서 무려 32년이라는 세월을 살고 있다.


그러던 지난 달 12일, 전남대학교 교직원들이 5.18 40주년을 맞아 당시 시민군에 합류했거나 무장 군인들의 총탄에 맞아 숨진 재학생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작은 참배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 고향은 광주이지만 실제로 ‘국립5.18민주묘지’라 명명된 5.18묘지에는 처음으로 발을 밟은 것이다. 언제부턴가 한번 쯤은 가봐야지 하는 생각은 가졌으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무려 40년 만에 그곳을 찾은 것이다.


묘지에 들어서는 나의 마음은 착잡했다. 아니, 무거움을 떠나 비장했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곳에 잠든 사람들을 면면히 살펴보니 당시 내가 살았던 동시대의 사람들이 상당했다. 아마도 나와 같은 혈기왕성했던 사람들이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다 군인들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먹먹해 옴은 부인할 수 없었다.


묘지를 빠져 나와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에 잠겼다. 우선은, 진작에 찾아보지 못했다는 회한과 당시 정권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 꼭 힘없는 시민들을 상대로 총칼을 들이대며 목숨을 빼앗아야만 직성이 풀렸을까, 또 그렇게까지 잔인한 행동을 저지르고 난 이후 당시 권력자들은 얼마나 마음 편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진정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었을까.


하지만, 4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총칼을 무기삼아 만행을 저지른 당사자들은 단 한 치의 반성이나 잘못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당당하다.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항변한다. 마치 당시 자신의 계획에 협조했던 다른 사람들도 같이 책임을 물어야지 유독 자신에게만 책임을 물으니 억울하다는 투다. 참으로 가관이다. 어찌 그래놓고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냈다고 하는지 참으로 맹랑하고 불손하기 그지없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양심’이라는 매우 독특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낱 같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그가 사람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분명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권력강화를 위한 길이라면은 상대가 누구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참히 처단하고 쓸어 버리는게 삶의 최고가치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이러한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사치는 아닐까.


5.18 40주년을 맞이한 오늘,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정에 들어서는 전 씨를 볼 때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묻고 싶다. 지금이라도 총칼을 앞세워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죄책감과 가족에 대한 아픔을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진정어린 사과를 하는게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사는 삶이 과연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하느냐고, 마지막으로 당신이 저지른 인간 이하의 방법으로 무고하게 숨져간 855명의 생명과 가족들에게 진 빚은 언제 어떻게 갚을거냐고.

올 해 그의 나이 만 89세다. 우리 나이로 말하면 90세다. 과연 그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시간이 없다.  


/ 발행인, 언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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